진혁은 이해할 수 없는 문장 속에서 허우적대길, 그 안에서 겨우겨우 익사하지만은 않길 즐겼다. — 그러곤 쪼그려앉더니 양팔을 벌려 한 손에 하나씩 철근의 튀어나온 부분을 잡고 바깥으로 몸을 떨어뜨렸다. 그렇게 목젖처럼 매달려 로비의 텅 빈 공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진혁은 철근에 감긴 그녀의 빨간 손가락을 지켜보면서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아래로 떨어질까봐 겁이 났지만 오늘도 막을 방도는 없었다. — 진혁이 그녀의 발목을 낚아챘고, 애영은 턱걸이하듯 있는 힘껏 팔을 굽혀 머리를 위로 들어올렸다. 둘은 자연스럽게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콘크리트 창 속으로 네모난 하늘이 풀장처럼 넘실거렸다. 진혁이 부르는 소리에 애영은 고개를 돌렸다. 그는 교복 앞자락에 묻은 모래를 털고 있었다. 부모..

가장 생각을 많이 하며 읽은 챕터는 , 그리고 ‘잘린 꼬리는 도마뱀인가요, 도마뱀이 아닌가요?’ 부분에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는데 그 생각에 마침표를 찍지는 못한 채라 ⋯ 에서 말하는 ’사랑은 비 온 날 저녁의 풀 냄새 같은 거겠지 말한다‘ 와 에서 말하는 ’비 온 뒤의 풀 냄새가 사람의 마음에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그리고 가장 공감인지 이해인지 모를 생각으로 읽은 책들은 , , , , 못 하나를 잘못 박아서 벽 전체가 엉망이 됐다고 — 나무를 깎아 만든 부엉이, 퀼트로 된 새 인형, 엽서 속 검은 고양이, 한쌍의 천사 조각상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순간이 있다 나는 자주 그게 끔찍해 보인다 —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우리는 종종 호수 이야기를 했다 마음속에서 호수는 점점 커져갔다 어떤 날엔 세상 전체가 ..

무한히 아름다운 날들, 물냉이 향, 서퍼들이 먹고 난 그릇들, 설거지하다 생긴 상처는 곪고 마르지 않고 해가 지면 너는 모닥불과 치킨 춤으로 시끄러운 비치 파티에 갔고 때론 롱보드 대신 다른 것을 옆구리에 끼고 돌아왔지 웃고 마시고 흔들며 해변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을 눈으로 좇게 되어 있어 — 피 묻은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던 피아니스트와 그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뻬쩨르부르그의 아이 피아노를 빌려줘요 7월의 어느 멋진 날에 울면서 키스를 한다네 신도 가끔 유리창에 코를 박고 자빠지지 그녀의 다듬어진 우아함에 반해서 피아노를 빌려줘요 — i의 몸이 모래사장에 완전히 파묻혔어요 팔월의 태양은 뜨겁고 파란 하늘 춥고 서늘한 모래 무덤 안 — 그 삼사일을 떠올리면 빗소리로 만들어져 빗소리에 잠기는 집이 생각나고..

바다 밑바닥은 생각보다 아늑해. 이곳엔 두 눈을 멀게 하는 태양도 늑대들의 울부짖음도 없고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물의 감촉. 꿈인 듯 꿈 아닌 듯. 이렇게 가지런히 누워 흔들흔들 흔들리고 있으면 구원을 기다리는 일 따윈 하지 않게 돼. 누군가는 이곳을 빛의 점멸 구간이라고 불러. 깜빡깜빡. 깜빡깜빡. 수초 사이로 지나는 물고기떼가 은빛 동전처럼 반짝거리면 손을 뻗어 잡으려다 말고 나에게 손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후론 손에 대해서만 생각했어. 밤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밤을 노래하는 사람들처럼. 손의 실종. 손의 실종. 무언가를 쥐어볼 수 없다는 것⋯⋯ 발도 얼굴도 흩어지고 내가 아주 작은 목소리가 되었을 때. 잠시 흰 돌고래의 몸을 빌려 수면 위로 솟구쳐본다면 멋질 거야. 지상에 전하는 마지막 윙크처럼...

우리의 여행은 달이 없다는 전제하에 시작되었다 달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걷는 동안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달은 다르면서도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을 찾으려면 밤의 한가운데로 가야 한다는 내게 너는 바다에서만 헤엄칠 수 있는 건 아니라 했고 모든 얼굴에서 성급히 악인을 보는 내게 사랑은 비 온 날 저녁의 풀 냄새 같은 거겠지 말했다 우리는 보폭을 맞추며 씩씩하게 나아갔다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은 온갖 종류의 그리움 같아 내가 말하면 구름이 아름다운 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겠지 핑퐁을 치듯